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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전 이틀 앞두고 장렬히 전사… 72년 만에 아들 품에 안긴 ‘고(故) 함상섭 하사’('25.5.14.)
- 작성자정도준
- 조회수59
- 등록일2025.05.14
□ 5월 14일 수요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27세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을 가족의 품으로 모셨습니다. ‘고(故) 함상섭 하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지난해 11월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발굴한 부분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7사단 소속의 고 함상섭 하사로 확인했습니다. ◦이번 신원확인의 결정적 단서는 함께 발굴된 인식표에 새겨진 고인의 이름이었습니다. 국유단은 이를 바탕으로 고인의 병적부를 열람한 후 행정관서를 찾아가 유가족의 소재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관공서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유해 수습 마지막 날인 11월 25일 친손자를, 3일 뒤인 28일에는 아들을 찾아 유전자 시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부자 및 조부-손자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고인은 올해 여섯 번째로 신원확인된 호국영웅입니다. 또한,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에서 집단으로 발굴된 유해 19구(인식표 7개) 중 고 정인학 일등중사에 이어 두 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입니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신원을 확인해 가족의 품으로 모신 국군 전사자는 총 254명이 됐습니다. □ 고인의 유해는 유해발굴을 경험했던 어느 한 대대장의 제보와 국유단의 전문 조사·발굴팀의 구슬땀이 있었기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육군 제7사단 예하의 대대장인 정준혁 중령은 지난해 10월 작전지역 지형정찰 간 지표면에 있는 방탄헬멧과 수통을 발견하고 국유단에 유해소재 제보를 했습니다. 정 중령은 동년 전반기에 실제 유해발굴에 참여한 경험이 있기에 이를 쉽게 넘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보를 받은 국유단은 전문 조사·발굴팀을 파견해 해당 지점의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해발굴기록병이 최초로 유해를 식별했고, 이를 본 발굴팀장이 함께 발견된 M1 소총 등 유품 출토 상황을 고려해 구획을 확장해서 발굴을 진행한 결과 추가로 유해 7구를 더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m 인근 또 다른 지역에서도 11구의 유해를 추가로 발굴했습니다. ◦고인의 유해는 두개골을 기준으로 연속성이 확인되지만, 하체 부분은 단절된 부분 유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해는 해부학적으로 엎드려진 모습이었는데, 다른 유해와 복잡하게 엉켜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로 볼 때 고인이 전사한 이후 급박한 전황 속에서 집단 매장됐다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그대로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 고인은 1953년 1월에 입대한 후 국군 제7사단에 배치돼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 참전했으며, 치열한 고지전 속에서 정전 2일을 앞두고 전사했습니다. ◦고인은 1925년 10월 강원도 횡성군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1949년 강원도 영월군 출신의 한 여성과 혼인해 1949년에 아들을, 1952년에는 딸을 낳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이후 고인은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1953년 1월에 제주도 1훈련소로 입대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국군 제7사단에 배치돼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1953. 7. 15. ∼ 23.)’에서 참전해 치열한 교전을 벌이다 정전협정을 불과 2일 앞둔 7월 25일에 전사했습니다. ◦당시 전투는 국군 제7·11사단이 금성지구(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해 전선을 안정시킨 공방전입니다. 한 치의 땅도 빼앗길 수 없었던 그 시기에 고인은 적과 치열하게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셨습니다. □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5월 14일 수요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보훈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유가족 대표인 아들 함재운 씨(76세)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고 하니 멍한 느낌이 듭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상한 기분입니다. 단지 목이 멜 뿐입니다. 유해를 찾아준 국가와 국방부에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하루빨리 현충원에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번 행사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보훈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 6·25전사자(호국영웅)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합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됩니다. ◦6·25전쟁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상황인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합니다. ◦국유단 탐문관들은 각지에 계신 유가족을 먼저 찾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고 계시지만 거동 불편하거나 생계 등으로 방문이 어려우신 유가족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언제든 연락 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립니다. 당신(YOU)도 ‘유(遺)가족’일 수 있습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