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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 작성자정구철
  • 조회수3100
  • 등록일2011.09.14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1학년 정구철

종강뒤 뜨거운 여름의 더위 속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잇던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국방부에서 주관하고 국정원에서 후원하는 6.25유해발굴현장견학이 그것이다. 평소 6.25전쟁 관련 영화나 영상물 등을 감명 깊게 봤던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신청하였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설렘과 호기심을 안고 학과동기, 선배님들과 함께 7시라는 조금 이른 시간에 강원도 양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서 유해발굴 감식단 관계자분의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설명과 이제까지의 진행정도, 의의,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전사자의 수, 사업이 언제 처음 시작 되었는지, 유해 발굴 사업의 어려움 등을 비롯하여 이제껏 몰랐던 여러 가지 사실들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유해를 발굴 했다고 다 해결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유해의 가족들을 찾기 위해서는 전쟁에 참전 하였던 군인들의 가족이나 후손들의 DNA가 필요한데 지금까지 통계적인 수치에 따르면 아직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아 그 수가 적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주변에 이 사실을 많이 알려주기를 부탁하셨다. 설명과 더불어 중간 중간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의 시간도 가지고 감식단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DVD홍보 동영상을 보니 어느새 버스는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부대 안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기념탑 아래에서 간단한 설명과 환영인사를 듣고 우리는 부대 안에 위치한 제4땅굴을 견학하기로 한다. 제4땅굴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마지막에 발견한 것으로 제3땅굴이 발견 된지 12년만인 1990년에 발견 되었다고 한다. 땅굴의 높이와 폭은 각각 1.7m 이고 길이는 무려 2km에 달한다고 한다. 입구 앞에는 처음 땅굴 탐사 시에 지뢰를 밟아 우리군 1개 분대원의 목숨을 대신해 죽은 탐사견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탐사 당시 긴박했을 상황과 지뢰가 터졌을 때의 아찔함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입구에서 우리 군이 판 역갱도를 통해 조금 내려가다 보면 북한군이 파놓은 땅굴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관람용 전동차를 타고 북으로 100m정도 가서 땅굴 내부에 대한 여러 가지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멈춘 지점이 비무장지대의 아래라는 말을 들으니 얼마큼 북으로 올라 왔는지 실감이 들었다. 우리 군이 판 역갱도와는 다르게 북한군이 판 땅굴은 표면이 거칠었는데 이것은 옛날식 방법으로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굴을 판 자국이라고 하였다. 다시 전동차를 타고 나와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혹시 이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땅굴견학을 마치고 우리는 군부대에서 제공한 맛있으면서도 색다른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 지금 발굴작업이 한창인 곳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1시간정도 산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발굴된 몇 가지 물건들과 발굴사업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그림과 글이 적힌 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올라온 뒤 관계자분의 설명이 시작 되었다. 10년 전 처음 이 사업을 시작 했을 때를 떠올리시며 그때의 상황을 말씀해 주시니 머릿속에 그때의 상황이 그려지는 듯 했다. 힘 있고 열정적인 설명에 가슴으로 박수를 보내며 실제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군인들이 열심히 땅을 파며 유해를 찾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미 발굴된 유해들이 그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며 자리 잡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쳐 싸웠던 군인들에 대한 고마움이 들고 그들이 가졌던 애국심을 조금이라도 본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학을 한 후 거의 한달 후에 우연히 고지전이라는 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6.25전쟁 휴전 협정이 시작된 후 산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치열했던 전투를 다룬 영화이다. 견학을 갔다 오지 않았더라면 그냥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장면들이 영화를 볼떄 머리에 깊숙이 남았다. 이 영화에 나온 ‘에록고지’ 지금의 백마고지가 견학한 수리봉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전쟁의 한 상황을 볼 수 있어서 발굴현장에서 느꼈던 감사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한 번 더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관계자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사업이 더욱 홍보가 많이 되고 잘 진척 되어 가족들의 품을 아직 찾아가지 못한 유해들이 빨리 찾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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