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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며

  • 작성자조성인
  • 조회수3236
  • 등록일2011.09.18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며>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1학년 조성인


1학기가 벌써 끝이 나고, 여름의 뜨거운 더위에 지쳐있는 나에게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다. 국방부에서 주최하고, 국정원에서 후원하는 6.25 유해발굴현장견학이 바로 그것이었다. 평소 6.25 전쟁과 관련된 영화나 소설 등에 관심이 많던 나였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견학신청을 하였다. 전쟁 관련 영상물에서 보아온 총과 탄피, 수류탄, 유해 등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설렘과 호기심에 차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강원도 양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이러한 설레는 분위기도 잠시, 버스 안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용석 조사과장님의 유해발굴사업 설명이 진행되면서, 버스 안 분위기는 점차 엄숙해지고 진지해졌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치신 호국용사 분들께 나는 그동안 어떠한 태도를 가졌었나.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의례적으로 태극기를 달고, 호국영령들에게 묵념을 하는 것이 다 아니었는가. 진정으로 그들을 생각해보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공로를 마음 속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는지를 생각하니 한없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또한 한여름이든 한겨울이든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치신 호국영령들의 유해발굴을 위해 힘쓰시는 유해발굴단 분들과 국군장병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부끄러움이 한층 더 밀려왔다. 이용석 조사과장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동안의 나의 안일한 생각과 태도를 지적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렸다. 과장님이 설명을 마치신 후, 과장님이 직접 제작하셨다는 6.25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영상물을 보여주셨다. 그 영상을 보면서 유해발굴사업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신 많은 분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여태까지의 나의 안일했던 생각을 반성하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강원도 양구에 도착했다.
강원도 양구의 날씨는 화창했다. 돌아가신 호국영령들께서 우리들의 방문을 반겨주시는 것 같았다. 이용석 과장님 또한 날씨가 좋아서 유해발굴현장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버스에서 하차한 후, 우리는 6.25 전쟁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추모비 앞에서 묵념을 했다. 마음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묵념을 마치고 우리는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판 제 4땅굴을 견학하기 위해 움직였다. 땅굴은 북한이 기습전을 목적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지하에 굴착한 남침용 군사통로라고 한다. 우리가 견학한 제 4땅굴은 1990년에 발견된 것으로, 규모는 높이 1.7m, 폭 1.7m, 길이가 무려 2,050m에 이른다고 했다. 우리 국군이 시추한 역 갱도를 따라 들어가니, 북한군이 파놓은 땅굴로 이어졌다. 우리는 내부관람용 전동차를 타고 북으로 향하였다. 전동차는 100m 정도 간 뒤에 멈췄다. 우리는 그곳에서 북한이 땅굴을 팠던 방법, 경위 등의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다. 북한군은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매일 몇 cm씩 땅굴을 팠다고 했다. 처음에는 고작 몇 cm를 파기위해 밤낮으로 고생했을 것 같은 북한군을 떠올리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러한 방법으로 2km를 넘게 땅굴을 판 북한군의 집요함과 끈질김에 소름이 돋았다. 또한 북한이 파 놓은 땅굴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북한의 거대한 남침의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북한이 판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끔찍했다. 이러한 땅굴을 우리 군이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다. 북한의 거대한 남침야욕에 섬뜩하면서도, 한 민족인 우리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고, 결과적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는 데에 대한 씁쓸함이 몰려왔다.
섬뜩함과 씁쓸함을 뒤로한 채, 우리는 유해발굴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수리봉에 올랐다. 이곳은 ‘피의 능선’이라고 불릴 만큼, 전쟁이 치열했고 참혹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유해발굴사업의 초석을 다지시고, 10년 넘게 이 사업에 몸을 담으신 이용석 조사과장님의 유해발굴사업 경험담과 사업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들었다.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하고 진행하기 위해 쏟으신 땀과 노력, 그리고 마지막 한 분의 유해를 찾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하시겠다는 그 의지와 열정에 우리들 모두 마음 속 깊이 감동을 받았다. 이용석 과장님의 열띤 강연이 있으신 후에, 우리는 갖가지 전쟁의 흔적들을 보았다. 국군들이 전쟁 시에 사용했던 총, 총탄, 대검, 수통 등이 모두 지나간 세월 속에서 녹슬어있었다. 지나간 60년의 세월.. 그리고 남아있는 전쟁의 잔해들.. 사진으로만 봐온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기분이 남달랐다. 그동안 영화 등에서 보아온 전쟁의 장면들이, 이곳 수리봉을 배경으로 머릿속에서 마치 영화처럼 재현되었다. 사방에서 총성, 폭발음,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전쟁유품들을 본 뒤, 우리는 실제 발굴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문 유해발굴병들 그리고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유해발굴에 힘을 쏟고 있었다. 우리는 발굴된 유해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발가락뼈, 정강이뼈, 갈비뼈, 그리고 총알이 뚫고 지나간 두개골까지.. 전쟁의 참혹함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었다. 발굴된 유해들이 신원확인과정을 거친 후에, 유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몇 십년만에 돌아가는 가족들의 품에 써늘한 유해로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쓰리고 뭉클했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많은 국군장병들의 유해발굴이 신속히 이루어져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임시로 마련된 봉안소에서, 다시 한 번 엄숙히 묵념과 헌화를 하면서, 많은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세계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냥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여러 분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희생으로 존속할 수 있었다. 호국영령들의 순고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북한’의 영토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유해발굴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 같이 힘을 쏟아야 한다. 비록 우리가 유해발굴사업에 직접 동참하지는 못하더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이 사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으로도 그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동안의 안일한 생각과 태도를 버리고, 호국영령들의 공덕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의 일생일대에 특별한 경험이자, 전환점으로 남을 이번 견학을 가능하게 해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또한, 마지막 한 분의 유해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불철주야 힘쓰시는 국방부 소속 유해발굴사업단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그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끝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루어져서, 유해발굴사업이 더욱 진척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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