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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청주 직지초 4-1 김강현

  • 작성자박진선
  • 조회수2992
  • 등록일2011.10.20
쌍둥이 묘 이야기

청주 직지초등학교
4학년 1반 김강현

이번 6.25 전쟁 유해 발굴 사진 유품전시회에서 나는 많은 유품과 사진을 보고 놀라거나 신기하였다.
유해 발굴 전시회에 전시되어 있는 유품들은 다 녹슬거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옛날 때 쓰던 유품을 보고 모든 친구들은 놀랐다.
6.25 유해 발굴 전시에서는 옛날에 쓰던 군인 모자, 물을 마시기 위해 쓰이던 물병, 시간을 알아보기 위한 시계, 전쟁 때 쓰던 신발, 치아를 닦기 위해 쓰이던 칫솔, 그리고 군인 아저씨들의 생명인 총알과 총도 있었다.
모두 신기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총알과 총이 가장 신기하였다. 왜냐하면 요즘에는 총알과 총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해 발굴하는 사진이 있었다. 유해 발굴은 우선 6.25에 살던 당시 사람들에게 물어 봐 유해 발굴을 하는 것이었다. 나도 유해 발굴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유해 발굴 과정은 너무나도 까다롭다.
지금 아직 발굴 안 된 시체만 13만 개라고 한다. 너무나도 많다. 그 중 쌍둥이 묘가 인상 깊었다. 형과 동생이 6.25전쟁에 참가를 하였는데 둘 다 아쉽게도 죽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형의 시체는 찾았지만 동생의 시체는 찾지 못했다. 그 후 십년이 지나서야 겨우 동생의 시체를 찾아 형 무덤 옆에 데려가 주었다고 했다.
다음에 꼭 커서 유해발굴을 해서 못 찾은 시체를 더 찾고 여러 가지의 유품을 더 찾고 싶다.
6.25전쟁 당시에는 우리나라 군의 시설이 턱 없이 부족하였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전투기의 개수도 너무나도 부족했고 군인도 많은 사람이 있지 못했다. 그리고 북한군은 탱크가 많았지만 우리 군은 탱크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군은 밀리지 않고 북한군과 싸웠다. 그래서 지금의 남한이 있을 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1950년도에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까? 아마도 난 전쟁터에 나가서 북한군에 의해 죽었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과 동물과 식물이 죽었을 것이다. 해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본 6.25 유해 발굴 사진 유품 전시회는 매우 뜻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지금 본 유품 전시회는 모든 국민들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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