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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인천진산초 6-4 유동균

  • 작성자구민정
  • 조회수2948
  • 등록일2011.06.20
6. 25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

인천진산초등학교
6학년 4반 유동균

1950년 6월 25일 새벽, 김일성 북한군이 기습공격을 하였다. 기습공격이었기 때문에 대비하지 못 한것이 약점이 되었다. 일주일 만에 북한군이 영천부근까지 진격해오고 기세 등등 했지만 유엔군과 합세한 우리 군이 진격에 나섰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내용이다.
오늘 2교시가 끝날 무렵, 우리는 강당에 올라가 전사자 유품을 감상하였다. 그 전에 동영상을 보고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의 순서와 그 후의 작업에 대해 보았다. 아직까지 실종된 유해만 13만 명이나 된다니 놀랄 따름이다. 고작 안착된 우리 조상님들이 2 만 명 밖에 되지 않는다니 가슴이 아프다. 또한 우리 세대의 사람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 같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선생님 할아버지께서도 중학교 때 6.25전쟁에 참여했다니 거의 모든 남자 들이 참여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 때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이해가 간다.
발굴 작업의 단계는 발굴준비(전투기록, 지역 주민의 증언 확보 등), 발굴 수습(문화재 발굴기법 적용 정밀 발굴, 전통방식에 따라 입관 태극기 포장), 신원확인을 위한 감식(성별, 나이, 사망원인, 인종감식), 후속조치(국립 서울 현충원 봉안 등)로 이루어져있다.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우리 조상의 나라를 지키는 애국 정신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6.25세대의 전사자 관련자료 제한과 급격한 국토개발로 전투현장훼손, 신원 확인에 필요한 DNA시료 저조 등의 조건 속에서 2년 마다 국군 전사자 1000구 이상 발굴해내는 믿기지 않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 성과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발굴 팀과 군인 분들께 기립박수를 쳐도 모자랄 것 같다.
오늘 전시회 사진 중 할머니 한 분이 손수건을 잡고 우시는 모습을 보았고, 발굴현장사진 중 유골과 철모와 총알 2개를 보고 끝까지 열심히 나라를 위해 싸우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기, 인원, 기습 공격이라는 불리한 환경에서 싸우셨지만 미래를 위해 후손을 위해 열심히 싸우셨음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할 것이고 우리는 조상의 희생과 노력에 보답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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