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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인천진산초 6-4 이지우

  • 작성자구민정
  • 조회수2930
  • 등록일2011.06.20
우리들의 관심이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인천진산초등학교
6학년 4반 이지우

2011년 6월 2일, 3교시 때 담임선생님께서 강당에서 열리는 6.25사진/유품전시회에 가자고 하셨다. 강당에 올라가기 전에 한편의 동영상을 보았는데 그 동영상에서는 6.25전쟁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를 찾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 동영상을 접했을 때 왜 그 분들의 유해를 찾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셨는데 그 분들은 이름도 모르는 산에 홀로 남겨져 계시는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 에서는 6.25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에서 열어주신 6.25전시회에서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영상에서 보았던 군모와 같은 모양에 구멍 두 개를 보았는데 그것과 똑같은 것을 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군모가 아닌 군인의 머리뼈였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군모를 쓰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머리뼈에 두 개의 총상을 맞았다는 것은 정말 6.25전쟁이 치열하지만 군인들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우리나라에게 바쳤다는 것이었다.
또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의 남한과 북한의 사정은 지금과 훨씬 달랐다. 6.25전쟁 당시에는 남한에는 탱크가 한 대도 보급되어있지 않았지만 북한에는 그래도 탱크가 꽤 보급되어 있었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군인 수, 전투 무기 등이 북한에 비해 많이 적었지만 우리나라 군인들은 열심히 싸웠다.
이렇게 전시회를 보고 나니 유해 발굴 사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만약 우리 아빠가 전쟁에 나가셔서 열심히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셨는데 이름도 모르는 산에 남겨져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찾고 싶을 것이다. 지금 현재 2000년부터 유해발굴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추진 중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먼저 6.25세대의 고령화와 전사자에 대한 관련 자료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급격한 국토개발로 인한 전투 현장이 훼손되었다.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으로 인해 국토개발을 많이 이루었는데 이렇게 국토개발을 함으로써 그 장소에 있던 유해들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원확인에 필요한 DNA 시료 채취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없애고 하루라도 빨리 유해를 찾기 위해서는 평범한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전사자를 찾지 못한 부모, 형제, 자녀, 3~8촌들은 DNA시료를 채취해 유해와 DNA를 비교해 가족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유해발굴사업도 더 빨리 마칠 것이고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전사자들이 이름 모를 산에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통해서 6.25전사자들의 유해를 모두 찾아 우리나라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신 전사자들이 모두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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