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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인천진산초 6-4 차유진

  • 작성자구민정
  • 조회수3044
  • 등록일2011.06.20
전사자들의 아름다운 희생을 생각하며...

인천진산초등학교
6학년 4반 차유진

지난 6월 1일 수요일, 강당에서 6.25전쟁 사진/유품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에서 유품들을 보며 있고 있었던 나는 6.25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우리들의 아픔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뒤쳐져있었다.(북한은 탱크가 수백대가 넘는 반면 우리나라는 탱크가 한 대도 없었다.) 인민군은 남포를 이용해 산을 뚫고 길을 만들어 낙동강까지 이르렀다. 이 소식을 들은 유엔은 서둘러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를 열었다. 인천 상륙 작전이 실시되어 북한군이 완전히 포위된 이후, 유엔 연합군은 내륙에 있는 모든 북한군을 포로로 잡은 뒤 북진을 시작했다. 서울을 점령하고, 1~2주 뒤에는 압록강 까지 이르렀다. 통일이 이루어진 듯 했다. 그러나 중국군, 그때의 말로 하면 중공군, 인해전술을 이용해 6.25전쟁에 참가했다. 군사를 죽여도, 죽여도 계속되는 전술로 유엔 연합군과 국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1.4후퇴) 국군과 유엔 연합군은 다시 서울을 잃어버리는 위기에 놓였다. 국군과 유엔 연합군. 중공군과 인민군은 오늘날 38선을 경계로 계속 점령당하고 점령했다. 전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자, 결국 미국과 소련은 서로 합의를 보았다. 합의 내용은 38선을 경계로 휴전 협정을 맺는 것이다. 이렇게 전쟁은 중단이 되었지만, 이 전쟁으로 유엔군 40,504명(미군 36,940명, 영국군 746명, 캐나다군 516명, 터키군 741명, 호주군 304명, 필리핀 군 112명, 태국군 129명, 네덜란드군 120명, 콜롬비아군 163명, 그리스군 192명, 뉴질랜드군 23명, 이디오피아군 121명, 벨지움군 99명, 프랑스군 262명, 남아프리카공화국군 34명, 룩셈부르크군 2명)이 전사하였고, 전사 및 실종된 군인만 250만 명에 이르며, 실종 및 사상된 민간인도 350만 명에 달했다. 그리고 전쟁 기간 중 10만 여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했고, 1천만 명이 이산가족이 되었다.
6.25전쟁 발굴감식단은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아직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13만여 위 호국용사들을 위해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나는 마지막 한분을 찾는 그날까지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국민과 함께 더욱 활발히 추진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어린이들도 6.25 전쟁 때 전사자들의 아름다운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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